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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스타/소설

덥페전력(20회) - 라이브

by 먀뭉 2025. 4. 24.

2022. 9. 25.

 

* 얼마 전의 코하마다 기표소에서 본 소재를 차용했습니다. 크레이지 비의 라이브를 보러간 마다라. 

 

 

 

 

관객들의 환호성 소리가 울렸다.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흐르고, 열기가 훅 느껴지며 심장이 뛴다. 찢어지게 환하게 웃느라 입가가 당겼다. 그런데도 한껏 치켜올라간 뺨이 되돌아오기가 어렵다. 

라이브 하는 순간은 늘 즐겁다. 같은 목소리로, 왁자지껄 떠들거나 크레이지 비를 연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시선이 잔뜩 모여 거대한 하나의 물결처럼 느껴진다. 커다랗고 뜨거운 파도에 안겨 끝도 모를 장소 까지 잔뜩 휩쓸려 가는 기분. 온 몸이 어딘가 떠 있는 것처럼 붕붕 고양된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귓가를 따갑게 웅웅거리는 노랫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발을 구르고, 춤을 추다가 안무를 잊어버려서 어물쩍 넘겼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게 크레이지 비니까!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네 마리의 미친 벌들. 

코하쿠는 그 안에서 신나게 뛰어다녔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유독 좋았다. 날이 좋은게 이유일까, 아니면 관객들의 환호성이 유독 큰 탓일까. 부푼 마음은 가라앉지 않고 점차 크기를 키운다. 격양되어가고 있는 텐션을 멤버들이 모르는 척 눈 감아 주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괜찮아! 하고 스스로 허용해줬던 게 어쩌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한창 무대 위를 뛰어다니던 꼬마 벌은 수많은 관중 사이에 어쩐지 눈에 익은 남자의 존재를 눈치 챘다. 어딘가 익숙한 실루엣이라 저도 모르게 시선이 한참 닿았다.

 평소와 다른, 짙은 색의 모자를 눌러 쓴 채지만, 그 아래에 쭉 드러나는 코 끝과 입가가 무척 인상적인 남자다. 고개가 들리나 했더니 시선이 마주쳤다. 가늘게 휘어지는 눈 커다란 입으로 벙긋, 벙긋 '코,하,쿠, 씨이.' 하며 손을 흔드는 모양이 태연하다. 되려 코하쿠가 놀랄만큼이나. 

 

코하쿠는 순간적으로 남자의 이름을 입 밖으로도 내뱉고 말았다. 제 입가에 여전히 마이크가 있다는 걸 잊어버린채로 .

 

" 미케지마 마다라?! " 

 

마다라- 다라-다라-다라-.... 

 

코하쿠의 입 속에서 튀어나온 그 짧은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웅웅 울렸다.  

 

제가 내뱉은 말이 그보다 더 큰 소리로 울렸다는 걸 순식간에 깨달은 코하쿠는 당황해서 시선만 굴렸다. 도와달라는 시선을 보내봐야, 무대 위에 있는 제멋대로인 벌들은 이 상황조차도 재미있다는 양 배를 잡고 웃어대기만 했다. 아! 진짜!! 도움이 되는 놈들 하나 없네! 

이러언... 음악이 여전히 흐르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노래보다 이 상황에 더 닿아있었다. 코하쿠와 정처모를 남자 사이를 번갈아 보는 시선들이 흥미를 띄었다. 호기심 섞인 시선을 피해  덮어 쓴 모자를 조금 더 꾹 눌러낸 남자의 난색어린 표정보다 더 망가진 건 코하쿠의 얼굴이었다.  

 

... 내는 망했다. 

 코하쿠쨩 아직 마이크 켜져있어여- 

 

 

 

 

" 이야아. 나는 코하쿠씨가 크레이지 비에서 꽤 조용히 묻혀있는 꿀벌이라고 오해했지 뭐니이. " 

" 조용히 해라.... "

" 이렇게나 커다란 이벤트를 벌릴 줄이야! 하하, 얌전하다고 생각한 마마의 큰 코가 다쳤구나아! "

 

저벅저벅  무대 뒷켠 복도를 성난 걸음으로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춰 뒤따라오는 얼굴을 노려본다. 공연히 휙 발끝을 휘둘러 봐야 남자 물 흐르듯이 제 발을 피해버릴 뿐이다. 

 

" 물리적으로도 다치게 해주까? 마다라항. " 

" 어이쿠우. 항복이란다아~ "

 

성큼 반발짝 뒤로 물러난 채 양 손을 반짝 들고 방긋 웃는 얼굴이 얄밉다. 더 화낼 건덕지도 없어서 공연히 바짝 세웠던 어깨를 늘어트린다. 아직 흥분이 안 빠져서인가. 감정이 쉽게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같다. 

멈췄던 걸음이 이어졌다. 대기실까지 가자니, 방금전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물어뜯을 게 분명한 멤버가 있어 정 반대로 이어지는 길로 걷다보니 소품으로 길이 막혀있는 복도까지 다다랗다.

 

따라오라는 말 하나 없는데도 성난 걸음을 뒤따라오던 남자가 여기까지 오는데도 별 말이 없었다는 게 떠오르니 괜시리 또 부끄러움이 차오른다. 원래 목적지가 여기였다는 것마냥 태연하게 턱하니 쌓여진 상자위에 걸터 앉는 모양을 재미있다는 듯이 내려다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 뭘 보나. " 

" 아니이. 이대로 와도 괜찮은건가 싶어서 그렇지이? "

" 히메루항들이 알아서 한댔다. 하여간, 전부 니 탓이다... 거기 있을건 또 뭐고. "

" 아하하~ 그렇게 크게 이름을 불러줄 줄은 몰랐지 뭐니이. "

 

감동이야아. 여전히 놀려먹기를 거두지 않는 남자가 곁으로 다가와 벽에 등을 기댄다. 후. 하고 모자 아래로내려온 앞머리를  불어 넘긴 미케지마 마다라는 평소답지 않게 헐렁한 후드 집업에 모자를 눌러 쓴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오프 때의 모습으로. 아니, 평소에도 이런 모습을 잘 본 적은 없던가? 

 

방금까지 무대 위에 있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작스레 공간감과 현실감이 훅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 니 내 놀리려고 여기까지 온거가? "

 

" 그럴리가아. 시간이 비었는데, 마침 근처에 크레이지 비 공연이 있다지 뭐니이? 혹시나! 하고 와봤는데 입구에서 알아봐주는 스탭이 있어서 살았단다아! " 

 

" 시간이 남으면 쉬지, 뭐한다고 내 무대를 보러오나." 

 

괜시리 못마땅한 얼굴로 마다라를 노려본다. 사실만 들어보자면, 영 없지 않을 이야긴데, 상대가 이 남자라 신뢰가 안갔다. 달콤하게 구는 꼴로 늘상 뒤에 뭐 하나 달고 오는 일이 잦아서, 이거 뭐 또 꿍꿍이 속이 있제? 하는 생각부터 대번에 먼저 들었다. 

 

 

" 이러언. 오해받고 있구나아. 정말로 코하쿠씨를 보러 온 것 뿐이야아?  "

 

흑흑 거리며 눈가를 비비며 우는 모양을 꾸며내는 모양에 코하쿠는 허. 참, 한숨을 내쉬었다 

 

" 니 가짜로 우는 거에 이제 안 당한다. 그냥 말해라 또 냅다 들고 나르지 말고. "

"하하하! 마마의 높이높이가 그리웠니이? 지금이라도 해줄, "

"아니 하지  말라는 소리잖나! "

 

대번에 거리를 좁혀 팔 안쪽으로 쑥 밀려들어오는 손길에 반사적으로 손부터 나와 턱 , 뻗어오는 손목을 잡는다. 다급하게 붙잡고보니 손목 건너로 느껴지는 힘이 영 그럴 생각 없이 뻗어나온 손이라는 게 훅 느껴지면서 맥이 턱 빠졌다. 또 속았다! 하여간 내 주변 놈들은 왜 다 이 모양이고. 

되려 힘이 잔뜩 들어있는 제 손이 붙어있는 채로 팔랑팔랑 손이 흔들렸다. 

 

" 안해애 안해애. 코하쿠씨가 싫어하는거얼 -"

" 그럼 진즉, 애초에, 말도 안꺼내면 되지않나. " 

" 하하하! 나는 남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걸 무지 좋아하거드은~ " 

" 자랑이다. "

 

시답잖은 소리나 해가며 거리를 좁힌 놈은 구태여 다른 자리를 두고 꾸역꾸역 제 옆자리를 차지한다. 박스가 이 놈과 내 무게를 다 감당이나 하겠나 싶다가도, 옆자리로 붙은 다른 온도의 신체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훨씬 저보다 높은 온도가 지금은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 지금 말하면 용서해주께 뭐 하러 왔나. "

" 나 신뢰가 이렇게 없을까아. "

" 그기, 니가 다 자초한 거제. 뺀질 거리는 얼굴로 속여먹는 게 하루 이틀이가... "

" 마마 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께! "

" 니는 마마가 아니잖아! " 

 

너무해애 너무해애. 시답지도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뿐인데도, 천천히 발이 바닥에 닿이는 기분이 든다. 환호성 소리가 요란하던 화려한 무대에서 일상으로 되돌아온 것 같은 기묘한 안온함이 살살 무릎부터 쌓였다. 

 

결국은 옆자리에 붙은 남자는 별다른 용건을 꺼내지 않았다. 

하는 거라곤 오늘 무대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를 늘어놓을 뿐이었다. 곡 배치가 재미있었다는 이야기. 중간에 퍼포먼스가 어땠다는 이야기. 제 무대를 자세히 보는 감상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던 터라 그래? 그래서? 더 부추기자 원래도 말이 많던 남자는 조금 멈칫하나 싶더니 천천히 하나하나 늘어놓았다. 하나같이 제 공연을 자세히 본 것들 이라 묘하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 니 진짜 내를 열심히 봤나보네. "

문득 말을 내뱉었을 때, 마다라는 말을 멈추더니 어쩐지 묘한 표정을 했다. 어딘가 난감한 듯한, 미묘한 표정으로 한참 저를 들여다 보다가 금새 빙긋 웃어보였다. 당연하지이. 코하쿠 씨는 내 파트너 인거얼.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굳이 저의 모습을 보러 무대에 찾아왔다는 게,  유닛 리더로써 어쩌면 당연한 일일텐데도. 좀처럼 닿지 않는 이 남자가 아주 가까워진 것 같은, 이상하게 뻐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지, 다른 누구도 아닌 미케지마 마다라인데. 의심 한 방울이 늘 떠나지 않으면서도 쉽게 그 위로 뭉실뭉실하게 덮힌 것들로 가리어진다. 또다시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무대에서와는 다른 기분. 끈질기게 쫒아가면 도망치는 저 시선을 오롯히 붙잡아 내고 싶다는 그런.... 

 

 

" 저기...." 

 

빼꼼히 뒤에서 스탭이 고개를 내민다. 오우카와 군, 다음 준비가.....  

이어지는 말에 공연히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맞다. 여기는 아직, 공연장이고 아직 차례는 완전히 끝난게 아니다. 오락가락하는 현실감에 귀가 멍하다. 

 

" 아! 네! 마다라항. 내 가야한다. 인자 끝나서 배웅해주러 가야하거든. "

" 네에. 열심이네. 남은 일도 수고해애. " 

 

어어? 깔끔한 인사말을 내뱉으며 툭툭 옷자락을 털고 쓴 모자의 매무새를 다루는 모양을 보며 코하쿠는 멍청한 얼굴을 했다. 

 

" .... 뭔데 니 가나? " 

" 으응? "  

 

말뚱말뚱한 시선이 마주쳤다. 아니, 나 만나러 온 거 아니었나? 정말로 이대로 가버린다고? 어차피 공연이 마치고 성주관에 가면 또 볼 낯짝이긴 하건만, 진짜로 용건 하나도 말하지 않은 채로 시답잖게 떠들다가 이대로 가버린다고 하니 영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여기까지 와놓고, 내 만나러 와놓고. 

 

아니, 나는... 말을 꺼내려는 순간 오우카와 군 시간, 다시 한번 재촉이 붙어왔다. 

마음은 급하고, 돌아보는 얼굴이 태연해서 공연히 억울하다. 아니, 허둥지둥 덜렁 빠진 구두 뒤축을 다시 밀어넣으며 달각달각 다가서고 있자면 부드러운 손아귀가 옷깃에 닿는다. 

 

탁탁, 가볍게 옷깃을 매만져 주는 게 영 간지럽다. 

 

" ... 내가 할 수 있다. " 

" 으응~ 내가 해주고 싶어서어. "

 

미케지마 마다라가 제 흐트러진 옷을 정리해주는건 하루이틀이 아니다. 근데 그럴 땐 대부분 더블페이스 일 때였다. 같은 얼굴로,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그와 저의 모습이 갑자기 어색해진다. 

 

" 코하쿠씨이. 나 이후엔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은데에- "

" ..... "

" 다음에 밥 먹자아. 전에 먹고싶댔던 복숭아 요거트도 사줄께에. " 

 

알았지이? 어린애를 달래는 모양으로 불만에 찬 제 속을 다 뒤집어 본 것마냥 웃어보이는 얼굴에 부아가 치민다. 그래, 일이 있으면 가야지.. 가는게 맞는데... 자꾸만 어른스럽지 못한 불만이 삐쭉삐쭉 튀어나와 인상이 와그작 찡그려지고 만다. 그럴라면 왜 여기까지 왔나. 

 

어쩌나, 감정이 다 제 맘대로 안되는 걸. 그러나 더 할 말도 없어지고 여전히 뒤에는 저를 기다리는 이가 남아있어서, 조금 뚱한 기색을 숨길수가 없다. 알았다. 하고 인사조차 않은 채 뒤를 팩 돈다.

 

" 나중에 봐아~ "

 

등 위로 남겨진 인사에 한숨을 내쉬고 만다. 타박 타박, 뒤따라 걸어가는 발걸음에 약간의 속상함이 쌓였다. 

내 방금 너무 어린애 같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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