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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스타/소설

우리 집에는 마왕이 산다

by 먀뭉 2025. 4. 24.



 

계약금 n만엔, 보증세 nn만엔, 월세n 만원짜리의 저렴한 원룸은 코하쿠가 처음으로 구한 집이였다. 이 독립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주로 누나든, 엄마든, 질리도록 붙어오는 사촌형아같은 집안 사람들의 온 힘을 다한 저지가 있었으나, 보아라. 코하쿠는 승리하여 갓 성인이 되자마자 제 집을 구해 나올 수 있었다. 

겨우겨우 다다미 넉장 반을 넘긴 작은 평수의 원룸이었으나,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코하쿠는 깊은 성취감과 승리에 도취에 있었다. 내도 이제 내 집이 생겼다. 멋대로 자고, 먹고, 놀고, 하지 말라는 짓 다 신나게 해볼거다! 

 

그렇게 다짐한 지가 겨우 24시간 전,

 

"음~~~ 꽤나 좁구나아? 인간의 집이란 전부 이렇게 다닥 다닥 붙어서 숨도 못 쉴 만큼 붙어있는거니이? 하하하! 작은 몸집이니 제 몸에 딱 맞는 크기가 좋은 거구나아! 마마에게는 많이 모자라지만! 과유불급!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겠지이~" 

 

이 말도 안되는 마왕에게 집을 홀라당 빼앗겨 버렸다. 

 

 

일의 시작은 같은 유닛의 멤버가 느닷없이 내민 것으로부터였다. 자아~ 코하쿠쨩~ 선물이라고오? 하고 내민 손바닥에서는 은색의 팔찌가 놓여있었다. 

 

"이게 뭔데? "

 

매번 파칭코에 드나드는 유닛의 리더는 매번 이런것들을 코하쿠에게 떠안겨주곤 했다. 때때로 작은 사탕이거나, 쓰지도 못하는 쿠폰, 조악한 장난감, 사슴벌레기도 했다. 술 김에 파칭코를 들렸다가 따지는 못하고 받아온 허물이나 쓰레기 같은 것들을 제게 안기는 것이다. 왜 하필 저냐고 한다면, 유닛 내 에서 가장 어려서인가? 

불쑥 짜증이 밀려와서 눈을 치켜뜨면 리더는 파하학 웃으며 

 

"아냐아냐~ 이번엔  진짜. 이사 선물이니까- "

 

흠. 이리저리 둘러보니 심플한 은제 팔찌는 제가 차기에는 조금 크지만 디자인도 영 나쁘지 않다. 이런 악세사리가 많지 않은 코하쿠는 왠일로 이 리더가 제게 좋은 일을 해주나. 하고 가볍게만 넘겼다. 고맙네 린네항. 하고 인사를 하고선 팔찌를 찼다. 

 

그러고 나서는 계속 이상한 일만 생겼다. 

무언가에 걸려 넘어질 뻔 하거나, 넓은 도로를 지나가는데도 자꾸만 툭툭 치였다. 엘레베이터가 잡히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무언가 계속 불운한 일만 연속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모여있는 중에도 유독 코하쿠에게만 변수가 닥쳤다. 후두둑, 어머 죄송해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머리에 물도 맞았다. 

누군가가 작정하고 괴롭히나? 싶을 정도의 최악의 날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고의가 아니고, 단지 코하쿠의 운수가 유독 나쁜 탓이었다. 화도 내지 못한 채로 코하쿠는 기가 쭉 빨렸다. 잔뜩 지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푹 자고 일어난다면 내일은 좀 다르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대로 아무일도 없었다면, 가는 길에 손목에 찬 팔찌를 보며 이거 하나 정도 얻은 게 유일한 좋은 일이었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하루를 끝냈을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전단지가 유독 시선을 끌었다.

 코하쿠의 집 근처의 마트 행사 전단지다. 그러고 보니, 집에 가면 먹을 게 없구나. 뭐라도 사 가지고 가야겠군. 그리고 떨어진 그 것을 주웠을 때, 따끔하게 스치는 감각이 일었다. 아차, 저도 모르게 손끝에 힘이 풀린다. 손끝에 송글송글 피가 맺혀있었다. 

 

"아 진짜 마지막까지! "

 

코하쿠는 한숨을 푹 내쉬며 손을 털었다. 방울 방울 떨어진 핏방울이 툭, 팔찌위로 떨어졌을 때였다. 오늘 중  가장 커다란 불행이 닥쳐왔다.  

 

손목에 찬 팔찌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 하고 눈치채면 마치 불에 달궈진 것을 꿰어차고 있는 느낌이었다. 살이 불타는 고통에 코하쿠가 팔찌를 빼내려고 했으나 도저히 빠지지가 않았다. 도리어 그것은 천천히 코하쿠의 손목을 돌아가며 확실한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윽..... 이게, 뭔데...!!!!! 

 

생생하게 타들어가는 감각에 눈앞이 아찔하다. 코하쿠의 무릎이 고꾸라졌다. 훅, 바닥에 무릎이 닿이거든 눈앞은 새카만 어둠이었다. 타들어가는 손목 너머로, 지독한 어둠 속에서 훅, 하고 어른어른한 불빛과 안개가 밀어닥쳤다. 뭐, 무슨, 찾아오는 수많은 위기 속에 코하쿠는 단 한가지의 의문밖에 뱉지 못했다. 꿈이가? 내 지금 선 채로 자는거가? 

그러나 꿈은 꿈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형태로 존재했다. 거대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제 앞에서 나는 것 같기도, 사방에서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조그만 인간이여. 지금 네가 무슨 일을 벌인 건지 알고 있는가? 

 

마치 제 영혼을 뒤 흔드는 듯한 목소리였다. 단지 물음을 들었을 뿐인데, 영혼이 뒤흔들리고 집어당기는 기분이었다. 코하쿠는 이제 제가 서 있는지, 누워있는지, 존재 하는지 조차 알수가 없다. 눈앞에는 일렁 일렁, 안개속의 어른거리는 불빛만이 흔들거렸다. 누구, 대체, 도와주세요. 

 

가엽게도. 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것이 잘못해서 걸려들었구나. 그러나 제 발로 굴러들어온 먹이를 쉬이 놓아줄 수는 없지. 아가, 도와줄까?

 

귀가 멍멍 했다. 가느다랗게 웃는 소리도, 중얼거리거나, 속삭이는 말도 태반은 들리지가 않았다. 멀미가 나듯이 속이 울렁거려서 헛구역질을 했으나 뱉어내지도 못하겠다. 단지 손목, 깊게 파고든 화상 안에서 내지르는 상처의 통증만이 코하쿠를 이 곳에 자리하게 했다. 헉, 헉... 코하쿠가 손목을 붙잡은 채 숨을 고른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면 곰이 물어가도 산다고 했다. 제게 닥친 모든 일을 이해하기가 벅차 코하쿠는 애써 제 정신을 붙들고 있기로 했다. 생각해.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귓가를 속삭이는 이 알수 없는 목소리들은 진짜가 아니야. 코하쿠는 안간힘을 쓰며 제 집을 떠올렸다. 어떤 것도 침범해 올 수 없는 아늑하고 작은 저만의 장소. 

돌아가고 싶다. 제 방으로, 제 집으로.  완벽하게 아늑한 저 혼자만의 공간으로. 

 

그게 네 소원이니? 

 

당연하지! 코하쿠는 입밖으로 내지 않았으나, 상대는 마치 그 이야기를 들은 것마냥 웃었다. 맑고 카랑카랑한 웃음소리가 울리며 세계가 마구 흔들렸다. 계- 약- 성- 립-이- 야- 쩌저적, 어둠 위로 깊은 균열이 생긴다. 그 사이를 가득 메운 것은 지독하게 짙은 초록이었다. 코하쿠는 세계와 함께 흔들리고, 쓰러졌다. 와장창, 깨진 균열 사이로 떨어지자 그 아래는 끝없는 추락뿐이었다. 거대한 바람의 압력에 흩날리면서 코하쿠는 온 몸을 끌어안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에 닿을 충격에 본능적인 대비였다.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은 감각과 함께 코하쿠는 눈을 떴다. 팔랑팔랑, 바람에 흩날리던 전단지가 그제야 툭, 하고 바닥에 닿았다. 코하쿠는 멍하니 제 손끝을 바라보았다. 베여있던 손끝은 흠집없이 아물었고, 손목에 끼워진 팔찌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손목을 채우고 있는 것은 틈없이 둘러진 고리모양의 화상자국뿐이었다. 

코하쿠가 더듬더듬 손목을 만졌다. 죽을 것 같이 들끓던 열감도, 고통도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뭔데 이거? 꿈, 꿈 아니었나? 온 몸이 뒤흔들리거나 없어지는 것 같은 고통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 있기가 힘들었다. 지독하게 긴 숨을 참아온 것처럼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한쪽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을 때였다. 

 

" 어이고오, 자네 정말 약하구나?" 

익숙하지 않은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코하쿠를 손쉽게 붙잡아 끌어안은 남자는 피처럼 붉은 색의 정장을 입고 있었다. 지나치게 화려한 의상과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은 듯 남자의 얼굴은 꽤나 단정한 상이었다. 큰 소리를 내며 웃는 얼굴은 일견 따스해보이기까지 했다. 부드러운 갈색의 머리가 이리저리 삐쭉거렸다. 이 남자를 코즈프로에 데려가면 부소장은 무조건 캐스팅하려 들겠지. 싶은 인상의 남자였다. 다만 문제가 좀 있다. 

 

" 괜찮니? 내 새로운 계약자씨이? "

 

남자의 머리 양쪽에는 무시할 수 없는 커다란 뿔이 그린듯이 붙어있었다. 깊게 웃는 눈가가 가늘어진다. 그 틈새로 비집고 나온 초록빛의 시선에 코하쿠는 절감했다. 무언가 잘못된 것과 연관되고 말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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