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앙스타/소설

불꽃놀이를 너와 함께

by 먀뭉 2025. 4. 24.

 

 

 

 

 

 

겍. 

끼이익 녹슨 문을 열면 보이는 인영에 코하쿠는 턱 걸린 소리를 냈다.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상대는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남자다. 오야아. 코하쿠씨이!!! 좋은 밤이야아아!! 난간에 팔을 기대고 선 남자가 이쪽을 바라보더니 손을 휘휘 흔들었다. 

 

이자식, 목소리 크다. 낮춰라. 밤인데 사람들 다 깬다 아니가. 

하하하! 일년 중 가장 소란스러운 하룻밤인데 내게 그런 소릴 하다니, 봐. 곧 나보다 더 큰 소리가 날텐데에?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뒤에서 거대한 축포소리가 들렸다. 

코하쿠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난간 뒤로 향했다. 화려한 불꽃이 순식간에 어둔 밤하늘 위로 번지듯이 퍼져나갔다. 뒤이어 커다란 소리와 함께 터져나가는 불꽃이 저마다의 색을 터트렸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남과 동시에 귀가 먹먹하게 잠겨들었다. 쏘아올릴때마다 터져나오는 폭발음으로 온 세상이 소란스러웠다가 조용해졌다. 

이쪽. 

그러니 이 커다란 남자의 목소리마저 잘 들리지 않는다. 그 손에 이끌려 옥상 난간에 들어서자 가려진 것 없이 드러난 밤하늘의 풍경이 눈앞에 드리워진다. 건물 사이사이를 용케도 곁으로 피해 제일 중앙의 불꽃놀이를 직면할 수 있는 기가 막힌 장소였다. 어디서 이런건 알아냈는지 몰라. 코하쿠는 흘끔, 옆자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코하쿠는 아직 갈아입지도 않았는데, 남자는 어느새 원래의 사복으로 갈아입은 후다. 

 

왜 몰래몰래 나와서 혼자보고 있나. 그대를 찾는 사람도 많을 터인데.  

하하하. 딱히 몰래 나온건 아니었는데에? 

그렇담 뭔가. 다들 다같이 모여서 불꽃을 구경한다고 바쁜데, 꼭 거기에 끼지도 않고 이런 외진데서 혼자 청승이나 떨고. 

 청승이라니이... 말이 심하네에~ 후후. 자지않고 늦게까지 남아서 불꽃을 보면서 논다고 하는 그룹도 있더구나아. 간식도 가지고 제법 즐거워보이길래 말이야. 흠. 역시 어린아이들이 노는 곳엔 비켜주는 게 맞지 않나 해서어? 

그대는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 

 

펑. 또다시 불꽃이 퍼진다. 화려하게 빛났다가 금새 사라지는 불꽃이 아쉽기도 전에 또다시 붗꽃이 피어올랐다. 눈앞이 번쩍거렸다. 

 

그럼 나를 불렀으면 됐잖나. 

코하쿠는 문득 내뱉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하. 나랑 불꽃놀이가 보고 싶었어어?

...딱히 그런건 아니지만  뒷세계니, 숨겨졌다느니, 별로 목적은 깔끔하진 않네만 그래도 우리도 유닛 아닌가? 그대가 나를 부를 줄 알았어. 

 

밤새 불꽃놀이를 한다는 아이돌 특집이었다. 유닛멤버로도, 나눠서도 출연한다는 소식에 코하쿠는 당연히 두 그룹 다 참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받아든 차례에는 단 두 번의 순번 뿐이다. 그것도 온전히 크레이지비로써였다. 그렇다면, 그 남자는? 그 남자는 혼자서 본단 말인가? 이 광경을? 수많은 불꽃이 터지고 흩어지는 광경은 아름다웠고, 제 소속의 유닛멤버들과 함께 하는 것은 운치있고 뜻깊은 순간이었으나, 자꾸만 내면에서 콕콕, 무언가가 찔러오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그 남자는 오로지 혼자서 지켜봐야 하나? 

 

다행인지 아닌지, 마다라는 저와 친분이 있는 나이츠의 레오를 데려와 실컷 불꽃놀이를 즐겼다. 코하쿠는 자지 못해 졸린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나서야 안도를 내쉬었다가도, 못내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그러니 채 몇 시간도 자지 못하고 남자를 찾아 ES를 뱅뱅 돌아다녔던 것이다. 

 

음. 마다라는 난감함을 숨기지 못한 얼굴로 코하쿠를 돌아다보았다.  

그렇지만 자네의 자리는 거기잖아. 괜히 나와 엮이는 걸 자주 보여서 좋을 게 없지. 

하아? 

 

코하쿠는 뭐라 반박하고 싶었으나 쉽사리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설득할만한 말이라곤 나오지 않고 이자식, 짜증나는 놈. 뭐라고 지껄이는 건가. 하는 순 말도 안되는 것만이 득실거렸다. 동시에 깊은 패배감같은 것이 몸을 짓누른다. 그런게 아니더라도 나는, 네 친한 친구보다 못하다는 건가?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이상하게 서운하다. 잠깐의 임시유닛, 그러나 우리도 유닛인데. 어이쿠. 한대 치겠어어~ 그 기색을 알아챈 건지 남자가 먼저 선수를 쳤다. 

 

자아.자아. 그것보다 역시 꽃놀이에는 마실거겠지? 코하쿠씨가 기특하게 마마를 찾아주었으니- 마마가 한턱 내지. 어느쪽으로 할래애? 

 

옥상 한 켠에 놓여진 낡은 자판기에 마다라가 거침없이 동전을 넣었다. 펑.펑 터지는 불꽃을 뒤로하고 마다라와 코하쿠는 점등한 자판기 곁으로 다가섰다. 나는 따뜻한 초코- 앗 이녀석 그건 팥죽이잖나! 같은 값이면 이게 더 재밌잖아아? 한창을 옥신각신하다 둘은 따뜻하지도 않은 미지근한 캔음료를 들고서 자리로 되돌아왔다. 

 

하루 내내 계속된다는 불꽃은 여전히 눈앞에서 새로운 꽃을 수놓고 있었다. 다를 게 없는 비슷한 불꽃의 향연이었는데, 이상하게 눈을 떼기 어려운 잡아끔이 있다. 두사람은 한참동안 말없이 캔음료를 홀짝거리며 불꽃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마다라가 문득 운을 띈다. 옆을 돌아보자 어느새 저를 보고 있던 남자가 희미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역시 우리는 이런 게 어울리지 않니이?

 

그런게 어디있나. 그렇게 생각했으나, 코하쿠는 말을 내뱉지 않은 채 시선을 밤하늘에 뒀다. 뺨을 간질이던 시선이 천천히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여전히 하늘을 수놓는 불꽃소리와 매캐한 화약 냄새, 그 사이를 어른어른 덮어내는 뒷골목의 스산한 공기가 평온하다는 감각을 줬다. 속상했다가, 짜증났다가, 열받았다가도 이상하게 납득해버리게 되서 싫었다. 

 

역시 이자식은 사람 열받게 하는 데 뭔가 있다고. 코하쿠는 그렇게 생각했다.  

 

 

 

 

 

 

 


 

코하쿠사앙~ 여기여기~ 

 

또냐. 코하쿠는 한숨을 쉬며 옥상으로 들어섰다. 작년과 같은 장소, 같은 남자가 손을 흔들며 코하쿠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맨날 니는 따로 보자고 하냐고.  

오오- 수박이군. 올해의 불꽃놀이는 구성이 화려한거얼? 앗, 도시락도 가져왔구나아? 

응 이건 쥰항이 나눠준거다. 동아리에서 나누고 남았다고 하더라고, 도시락은 니키항이-  앗, 이자식 말 돌리지 마라! 

 

하하하. 마다라는 웃으며 코하쿠가 건내는 것들을 받아들고 정리를 했다. 다 티나는데, 코하쿠는 투덜거리면서도 신발을 벗어들고  돗자리 위로 올라앉았다. 아예 여기서 보려고 작정을 한 건지, 작년까지 휑하기 그지없던 옥상에는 이미 이것저것 갖춰져 있었다. 옥상 바닥에 깔아둔 돗자리위에는 코하쿠가 가져온 것 외에도 간식 몇 개와 음료수, 담요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놓여있었다. 잘 살펴보면 한쪽 구석에는 모기향도 피워놓고 있다. 

저번에 코하쿠씨, 잔뜩 물렸었잖니. 시선을 눈치챈 탓인지 마다라가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뭔데 올 해는 제법 본격적이네. 저번처럼 모르는 척 혼자 빠져나갈까 싶었더니, 이번엔 먼저 마다라 측에서 연락이 왔다. 그 때의 장소에서 함께 보겠냐고 먼저 제안을 했을때, 코하쿠는 잠깐 동안 꿈인지 의심을 했다. 그러나 꿈도, 거짓말도, 함정도 아닌 날이 다가왔다. 완벽하게 불꽃놀이를 즐길 준비였다. 

시간만 빼고. 코하쿠는 아직 어둠으로 물들지 않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너무 이른 시간이다. 

 

불꽃놀이. 오늘 저녁부터 하는거 아니었나?  

코하쿠씨는 분명, 초반 순서였던가아? 후후. 늦지 않게 보내줄테니까 걱정 말라고오? 

당연하지. 늦을라하면 니를 때려눕혀서라도 가버릴거다. ..물론 그 후에는 돌아오겠지만. 

 

그러나 코하쿠도 이미 알고있다. 올해 받은 시트에도 더블페이스의 차례는 없었다. 뭐, 당연한 일인가.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아예 두사람의 유닛이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유닛끼리 함께 나오는 게 올해의 특별순서였으나, 이마저도 각자 다른 유닛과 함께 하기로 이야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니 정말로 올해는 함께 나갈수 없는 것이다. 

이럴줄 알았다면 작년에 이자식을 쥐어패서라도 같이 나가자고 할 걸. 코하쿠가 은근히 마다라를 바라보거든 눈을 마주친 남자가 씩 웃었다. 

자아자아. 그렇게 바라본다는 것은- 역시 눈치채고 있었구나아? 지루해하는 코하쿠상을 위해 마마가 준비했어요오? 

짜잔! 하며 마다라가 무언가가 많이 들어있는 봉지에서 부스럭거리며 꺼내든 것은 스파클라다. 내내 글자를 연습한 덕에 요새들어 자주 보는 물건이었다. 

 

뭔데. 연습하자고? 

후후. 성실한 학생이구나아. 그치만 그건 아니고오. 

 

어리둥절 한 사이  슥슥 움직이는가 하더니 어느새 물 양동이마저 옆자리에 가져다 뒀다. 두사람의 손에 하나씩 쥐어진 스파클라 위에 불을 붙이자 끄트머리가 사그러들듯이 타틀어가다가 점차 불꽃이 퍼졌다. 타닥타닥 작은데도 커다란 빛을 내며 불꽃이 터져나왔다. 그 모양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조용한 남자에게로 시선이 닿았다. 내려앉은 눈동자 속에 비친 불빛이 반짝거렸다. 

밤하늘을 수놓던 것과 달리 손 아래에 쥔 불꽃은 금방 사그러들었다. 손에 남아있는 것은 다 탄 재와 깍지 뿐이다. 그 후로도 마다라가 가져왔다는 새로운 불꽃놀이 몇 개를 손 아래에서 태웠다. 별무늬도, 토끼무늬도, 색색으로 변하며 타는 수많은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밤이 올 생각이 없었다. 너무 이르다. 탄 냄새가 지독해질 즈음에서야 둘은 잠깐의 불장난을 멈추고서 가져온 간식을 하나씩 꺼내먹었다.  와삭, 베어문 수박은 약간 미지근했지만 달았다. 

 

그래서? 

음? 

왜 이렇게 일찍부터 부른 건데. 굳이 굳이 불꽃놀이용 옷까지 입고 오라고 하면서. 

 

올해 맞춘 불꽃놀이용 진베이는 심야까지 이어지는 방송을 위해 맞춰진 옷이다. 작년 티셔츠보다야 익숙한 것이 훨씬 좋았지만, 어쩐지 실내복을 외출까지 이어 입은 기분이라 묘하게 부끄러웠다. 좀 더 어두워진다면야 티도 안날 것이, 아직 화창한 시간이었던 덕에 툭툭 튀어보였다. 옆자리에 앉은 남자도 저와 똑같은 옷차림이다. 코하쿠가 아닌 척 훑어보았다. 도착했을 때부터 생각만 하고 말로 내뱉지 못했지만, 남자도 유독 일본식 복장이 잘 어울리는 인상이다. 팔 다리가 길어서 꽤나 시원시원해보인다고 해야하나. 쓰잘데기 없는 상념이 긴 사이 와삭와삭 수박을 베어물던 남자는 발간 부분이 다 사라지고 나서야 낯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같이 하고 싶어서? 

 

수많은 고비를 넘어온 남자는 시시때때로 이렇게 솔직해진다. 어딘가 수많은 자리를 헤매다가 온 시선이 코하쿠에게 멈춰서곤 곤란한 얼굴을 했다. 하아.... 마다라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손을 늘어트렸다. 

 

..... 하고싶었어. 자네랑 제일 먼저. 

 

좀 유치한가? 하고 마다라가 어색하게 웃었다. 

코하쿠는 그 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어? 어어? 갑작스레 튀어나온 진심이다. 매번 도망만 치던 남자가 토해내는 말이 커다란 타격이 됐다. 후두둑, 채 씹지 못한 조각들이 후두둑 떨어지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코하쿠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마다라를 바라보았다. 

 

코하쿠씨의 제 자리가 있는 건 알아아. 마마는 언제나 네가 원하던 자리에서 즐겁고 행복하기를 응원하고 있단다아? ...그렇지만, 가끔은 ... ....가끔은 내가 코하쿠씨를 먼저 독차지 하고 싶네.

 

안되려나아? 돌아오는 반문에 안된다고 말을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코하쿠가 삐그덕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후후... 딱딱하게 얼어붙은 코하쿠의 곁에 앉은 남자가 안도한 듯이 웃었다. 아아. 이상하다. 그 모양을 보는데 자꾸만 어딘가 삐걱거리기만 했다. 말할 수 없는 것이 벅차오르고, 가슴께가 뻐근해지는 감각이 쿡쿡 폐를 찔렀다.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러나 발끝까지 빠듯하게 차오르는 것은 분명한 기쁨이라. 코하쿠는 무어라 답해야할지 모르고 그저 마다라가 내민 간식을 꾸역꾸역 입에 밀어넣을 뿐이었다. 

 

 

 

 

 

 

 

 

 

'앙스타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케지마 마다라가 돌아왔다  (0) 2025.04.24
우리 집에는 마왕이 산다  (0) 2025.04.24
크리스마스에 산타는 올까요?  (0) 2025.04.24
전력- ジャージ (져지)  (0) 2025.04.24
전력- 여름의 끝  (0) 2025.04.24